동산 이중매매와 배임죄 성부


 
 1. 사안의 개요

 

피고인은 ‘인쇄기’를 甲에게 양도하기로 하고 계약금 및 중도금을 수령하였음에도 이를 자신의 채권자 乙에게 기존 채무 변제에 갈음하여 양도함으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甲에게 동액 상당의 손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배임죄로 기소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1) 부동산 이중 매매의 경우 2) 동산에 대한 이중 양도담조의 경우, 3)  채권의 이중양도의 경우, 4) 면허·허가권 등의 이중양도의 경우에 대해서는 배임죄가 성립한다는 것이 확립된 대법원 판례입니다.

 

이에, 동산 이중 매매의 경우에도 배임죄가 성립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던 사안입니다.

 


2. 판결요지(대법원 2011. 1. 20. 선고 2008도10479 전원합의체판결)
 

<다수의견의 판결 요지>

 

[1] 매매의 목적물이 동산일 경우,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계약에 정한 바에 따라 그 목적물인 동산을 인도함으로써 계약의 이행을 완료하게 되고 그때 매수인은 매매목적물에 대한 권리를 취득하게 되는 것이므로, 매도인에게 자기의 사무인 동산인도채무 외에 별도로 매수인의 재산의 보호 내지 관리 행위에 협력할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없다. 동산매매계약에서의 매도인은 매수인에 대하여 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지 아니하므로, 매도인이 목적물을 매수인에게 인도하지 아니하고 이를 타에 처분하였다 하더라도 형법상 배임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2] 피고인이 ‘인쇄기’를 甲에게 양도하기로 하고 계약금 및 중도금을 수령하였음에도 이를 자신의 채권자 乙에게 기존 채무 변제에 갈음하여 양도함으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甲에게 동액 상당의 손해를 입혔다는 배임의 공소사실에 대하여, 피고인은 甲에 대하여 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단을 수긍한 사례.
 


 < “이중매매” 관련하여 분석한 부분(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위 의견은 동산 이중매매에 대해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한 근거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어, 이를 게재합니다.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나. 다수의견이 부동산 이외 재산의 이중매매와 부동산 이중매매에 배임죄를 인정한 판례를 분석한 부분은 이중매매와 배임죄 법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 부분을 아래에 전재한다.


(1) 부동산 이외 재산의 이중매매

 

먼저, 양도담보로 제공한 동산을 제3자에게 다시 담보로 제공하는 등의 처분행위를 한 것을 배임죄로 처벌한 기존 판례의 사안은, 점유개정 혹은 반환청구권 양도에 의하여 1차 담보권자에게 이미 담보권이 귀속된 상태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담보권자는 담보목적물에 대하여 대외적으로 소유권을 갖게 되고 담보권설정자는 담보목적물을 그대로 사용·수익하면서 이를 담보권자의 재산으로서 보호·관리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이러한 측면에서 담보권설정자를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채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채권의 양도인이 양수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는 취지의 판례는, 당사자 사이의 채권양도계약에 의하여 채권이 양수인에게 유효하게 양도된 이후의 상황을 다루는 것이다. 즉, 이 역시 채권양도계약의 목적이 된 권리가 채권양수인에게 이전된 이후에 채권양도인은 채권양수인에게 귀속된 채권을 보호·관리할 신임관계에 기한 의무를 부담하는 것을 전제로 채권양수인의 사무 처리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위 판례의 사안들은 기존 채무의 변제 등에 갈음하여 채권양도가 행하여져 양수인의 반대채무 이행이 모두 완료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매매대금이 모두 지급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동산 이중매매가 배임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안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또한 면허·허가권 등의 이중양도 사안도 같은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다. 면허·허가권 등의 양도의 경우 양도인이 약정에 따라 면허·허가명의 변경신청 등에 소요되는 서류를 양수인에게 교부할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서류의 교부를 통하여 권리이전의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관할 관청의 개입이라는 요소를 제외한 양도인과 양수인의 내부관계에서는 양도계약의 체결에 따라 사실상의 권리이전이라는 효력이 발생하고, 다만 양도인이 양수인으로 하여금 관할관청이나 제3자에 대한 관계에서 적법하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차원에서 명의변경 등의 절차에 협력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면허·허가권 등 권리의 양도와 동산의 매매는 그 구조를 전혀 달리하는 것이다.
 
결국 위 판례들의 사안은 계약상 채무의 이행 이전에 매도인의 이중처분으로 인하여 계약의 목적이 된 권리의 이전이 이행불능에 이르게 되는 전형적인 이중매매의 사안으로 볼 수 없고, 계약의 목적이 된 권리가 계약의 당사자 일방으로부터 계약 상대방에게 이전된 상태에서 그 계약의 목적물을 계약 상대방의 재산으로서 보호·관리하여야 할 신임관계가 형성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경우라는 점에서, 이들 사안에서의 판례법리를 동산 이중매매의 경우에까지 원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2) 부동산 이중매매  

 

○ 판례가 부동산 이중매매에 대해 특별하게 취급한 연혁적인 이유

물권변동에 관하여 이른바 의사주의를 채택하고 있던 의용민법 아래에서는 제1매수인과의 매매계약의 체결만으로 목적물의 소유권이 매수인에게 귀속되고 소유권이전등기 혹은 그 인도는 단지 제3자에 대한 대항요건에 지나지 않는 탓에 이중매매행위는 동산과 부동산을 불문하고 제1매수인에 대한 횡령죄를 구성하게 된다. 

지금까지 의사주의 법제를 고수하고 있는 일본 형법에서 위 이중매매행위를 횡령죄로 계속 처벌하여 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반면 물권변동에 관한 형식주의 법제를 취한 독일의 경우 형법 제266조 제1항 배임죄에 관한 규정에서 ‘법률행위나 신용관계 등에 의하여 부과된 타인의 재산상 이익을 꾀하여야 할 의무’의 위반행위를 배임죄로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일반적 해석론에 따르면 매매 등 계약상 채무를 이행하고 그와 동시에 계약 상대방의 이익을 고려하는 의무는 여기서 말하는 타인의 재산보호의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결국 배임죄의 성립을 부정하고 있는데, 이 역시 형식주의 법제 아래에서는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민법은 그 최초 시행일인 1960. 1. 1.부터 현재까지 부동산에 관한 물권의 득실변경은 등기에 의하여, 동산에 관한 물권의 양도는 인도에 의하여 각 효력이 생기는 것으로 규정하여 이른바 형식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므로(민법 제186조, 제188조 제1항), 등기 또는 인도로 인하여 매수인에게 소유권이 이전되기 이전의 단계에서 매도인이 매매목적물을 타에 처분하는 행위는 더 이상 횡령죄를 구성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판례는 부동산의 이중매매행위가 배임죄를 구성한다고 보았고 이러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이는 종래 물권변동에 관하여 의사주의를 채택한 의용민법 아래에서 부동산의 이중매매를 범죄시해 오던 태도를 물권변동에 관하여 형식주의로 전환한 현재의 법제 아래에서도 그대로 유지한 결과 그 적용법조를 배임죄로 바꾸어 계속 처벌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 부동산 이중매매를 배임죄로 의율한 대법원 판례에 대한 비판

 

이는 부동산의 이중매매에 관한 기존 판례가 처음부터 민사법의 기본원리와 어긋나게 배임죄에 관한 형벌법규를 해석한 것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근거가 될 수 있다.
 
또한 부동산 이중매매의 사안에 관한 기존의 판례에 대하여는 위와 같이 행위의 비난가능성이라는 측면에 치중하여 민사법의 기본원리와 배치되고 논리적으로도 일관성이 없는 법해석을 한 나머지, 기본적으로 자기의 사무에 불과한 계약상 채무의 이행을 등기협력의무와 같은 작위적 개념을 이용하여 타인의 사무로 변질시킴으로써 배임죄의 적용범위를 부당히 확대시킨 것이라는 비판적인 견해가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판례는 매도인이 부동산을 이중으로 매도하고 제2매수인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준 경우에는 제1매수인에 대한 관계에서 배임죄의 성립을 인정하는 반면, 제1매수인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준 경우에는 제2매수인으로부터 중도금 이상의 대금을 수령하였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관계에서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대법원 1986. 12. 9. 선고 86도1112 판결, 대법원 1992. 12. 24. 선고 92도1223 판결, 대법원 2009. 2. 26. 선고 2008도11722 판결 등 참조).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기 전에는 서로 대등한 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제1매수인과 제2매수인에 대하여 그들의 신뢰에 차이를 두고 그에 대한 보호의 정도를 달리할 합리적 근거를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는 사정을 감안하면, 이러한 판례의 태도는 중도금의 수수를 기준하여 신임관계의 발생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침해행위를 모두 배임죄로 처벌하는 입장에 대한 비판적 고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계약 당사자 사이의 중도금 수수 시기, 방법, 액수 등에 관한 사항을 확인하지 않은 채 매도인이 중도금이라는 명목의 대금을 수령하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매도인이 자신의 재산을 마치 타인의 재산과 같이 취급하여 매수인을 위하여 그 재산을 보호·관리하여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매수인에 비하여 매도인에게 지나치게 과도한 의무를 지우는 것으로서, 계약 당사자 간의 대등한 법적 지위의 보장을 전제로 하는 쌍무계약의 본질에 반하는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는 매수인이 매매잔대금 지급의무를 불이행하였음을 들어 매도인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서 배임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매도인은 중도금을 수령한 이후에도 매수인으로부터 나머지 대금을 지급받지 못한 때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 통상적으로 대금을 전액 지급받을 때까지는 매매목적물에 대한 소유권이전을 거부할 수 있음에도 그 상태에서 매매목적물을 매수인의 소유물과 같이 취급하여야 한다고 강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적어도 매도인이 잔금까지 수령하여 매수인의 소유권이전에 협력하여야 할 의무만을 부담하는 때에 비로소 상대방인 매수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학계의 비판적 견해도 같은 이유에서 경청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에 덧붙여, 매도인이 매수인으로부터 중도금을 수령하였다는 사실은 당사자가 별도의 손해배상책임 없이 계약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 해당할 뿐, 매도인의 매수인에 대한 소유권이전의무를 매도인 자신의 사무에서 타인인 매수인의 사무로 전환하는 요소로는 볼 수 없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또한 민사적으로 채무불이행의 유형에는 이행지체와 이행불능이 모두 포함되어 있고 채무자가 적극적으로 계약의 이행을 불능케 하는 행위를 하였는지 여부는 채무불이행에 따른 책임의 유무 및 정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데, 부동산 이중매매를 배임죄로 처벌하는 기존 판례의 취지에 따라 매도인이 소극적으로 목적물의 소유권이전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행위는 배임죄를 구성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목적물의 소유권을 타에 처분하여 채무의 이행불능 상태를 초래하는 행위는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해석한다면, 이는 민사적으로는 동일한 법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채무불이행에 대하여 형사적으로 그 취급을 달리하는 것으로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이와 같이 부동산 이중매매가 배임죄를 구성한다고 보는 기존 판례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으나, 이에 관한 판례법리가 오랫동안 판례법으로 굳어진 마당에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입장을 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여기서는 그 당부에 관한 논의를 유보한다고 하더라도, 반대의견의 입장과 같이 이러한 기존 판례의 취지를 유사한 사안에 그대로 원용하여 그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채무관계의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계약에서 단순한 채무불이행과 배임행위의 한계를 무너뜨리고 사법기관의 자의에 의한 법적용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 결론
 
결국 매매거래 일반에 있어 매도인이 제1매수인으로부터 중도금을 수령한 이후에 매매목적물을 이중으로 매도하는 행위가 널리 배임죄를 구성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동산 이중매매의 경우에도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인정하는 것은 부동산 이중매매를 배임죄로 인정한 기존 판례가 안고 있는 내재적 한계를 외면하고 형법상 배임죄의 본질에 관한 법리적 오류를 동산의 경우에까지 그대로 답습하는 셈이 되므로 반대의견에는 찬성하기 어렵다

 

이중매매, 이중양도담보와 관련한 궁금점은 정성락

변호사에게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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